
그거 있잖아, 저거 가져와 봐 하는 말이 입에 붙기 시작할 때가 있다. 분명 머릿속에는 그 물건이나 사람의 형상이 뚜렷하게 떠오르는데, 정작 적절한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머뭇거린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생기는 건망증이라며 단순하게 넘기기 쉽지만, 가끔은 불현듯 몸과 뇌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뇌를 피로하게 만드는 자극의 과부하
단어가 즉각 떠오르지 않는 현상은 무조건 뇌 세포가 파괴되어 생기는 결과가 아니다. 정희원 노년내과 전문의는 현대인의 뇌가 조기 노화를 겪는 대표적인 이유로 뇌의 과도한 피로를 꼽는다.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 자극적인 숏폼 영상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디지털 정보는 전두엽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입력되는 정보는 넘쳐나지만 뇌가 이를 정돈하고 꺼내 쓸 여유를 얻지 못하면서, 원하는 단어를 찾아내는 인지 회로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식습관과 뇌의 선순환 회로
이러한 피로는 우리가 무심코 선택하는 식습관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정제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는 도파민을 일시적으로 분출시켜 만족감을 주지만, 이내 뇌를 깊은 피로 상태에 빠뜨린다.
자극적인 음식과 매체에 뇌가 계속 노출되면 기억을 정교하게 다듬어 표현하는 능력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대화 속에서 구체적인 명사 대신 그거나 저거 같은 지시대명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나를 혹사하지 않는 순응의 지혜
정희원 전문의는 노화가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정해진 미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삶을 몰아붙이기보다 내 몸과 뇌가 보내는 피로의 신호에 순응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사소한 루틴을 다정하게 가다듬고 뇌에 쉼을 주는 것만으로도 전두엽의 기능을 건강하게 보호할 수 있다. 억지로 기억력을 높이려 애쓰기 전에 뇌를 지치게 만드는 자극부터 줄여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말문이 막혀 머뭇거리는 순간을 무작정 쇠퇴와 치매의 징후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과도한 자극 속에서 버텨온 뇌가 잠시 휴식을 요청하는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나이 듦을 겁내며 자책하기보다 지금 내 일상의 피로를 다정하게 둘러보는 판단이 삶의 품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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