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간호사가 증언한 육영수 여사의 마지막… “해진 속치마 세 번 덧대 입어”

35년 동안 서울대학교 병원 VIP 병실을 지켜온 이해주 간호사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한 페이지였던 육영수 여사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했다.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저격당한 육영수 여사는 즉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수술실에 함께했던 이 간호사는 총알이 머리를 관통해 출혈이 심각했던 긴박한 상황을 전하며, 머리부터 코까지 압박 붕대로 감긴 여사의 모습을 회상했다.
수술 후 회복실로 옮겨진 육 여사의 곁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었다. 이 간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눈물도 없이 육 여사를 바라보던 뒷모습을 기억했다. 인공호흡으로 가냘프게 심장이 뛰고 있던 육 여사와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약 20분간의 짧고도 비극적인 마지막 이별을 나누었다.

육 여사의 임종 후, 청와대 측에서 유류품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하지만 긴급했던 응급 처치 과정에서 육 여사가 입고 있던 옷과 머리카락 등이 이미 쓰레기로 처리된 상태였다. 이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직원들은 밤새 쓰레기더미를 뒤져 유품을 찾아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된 유품은 현장에 있던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육 여사가 입고 있던 한복 속치마는 천을 덧대어 세 번이나 재활용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이해주 간호사는 “듬성듬성 투박하게 손바느질된 속치마를 보며 평소 소박하기로 유명했던 여사의 성품을 다시금 깨달았다”며, 유품 앞에서 직원들과 함께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았던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현대사의 가장 아픈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는 그날, 육영수 여사가 남긴 것은 화려한 수의가 아닌,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검소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었다.



















댓글30
한마디
그 시절에 똥물 흐르는 하천위에 하꼬방 검정 기름 떡칠하고 호롱불 하나에 콧구멍 시커멓고 부모님과 4남매 한방에 살았어요. 박정희, 육영수, 박근혜, 아들, 가족들 땡 9시 뉴스 나올때, 논밭에서 막걸리 마시는 모습 볼때... 하늘과 땅의 운명을 안다는 나이 지천명을 넘기니깐 어느것이 롷고 그른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학생들 데모할때 물한모금 못전해준게 가슴 아플 따름입니다.
빨 🐕 이들의 댓글과 리찢째멍 꼬라지가 망국의 길 빨치산 후예들이 세상
18년 아니 영구 독재 기도하고 나라를 통째로 사유화해서 처먹으려던, 독립군 잡던 왜놈 장교 출신 독재자와 함께 부귀영화 누리던 여자 아닌가...국모?...아는가? 명성황후라며 국모 지랄하던 민비는 당대에 전 백성이 때려죽이고 싶어 했던 비리와 망국의 대명사 "늙은여우"였다는 것을!
대체 한게 뭐있나?...새마음이니 뭐니 극우골통만 양성하고, 김종필도 손을 절레절레 흔든 오만과 고집은 뭐고?
참다운길벗
거짓이라도 혜경이 정숙이 미담 하나라도 있냐 카드나 쓰고 무슨 무식한 짓거리 해대는것들 어디다대고 나발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