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청춘스타이자 배우 김수현을 빼닮은 과거 인기 연예인의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날렵한 턱선과 우수에 찬 눈빛으로 소녀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비주얼의 주인공은 바로 ‘원조 꽃미남’ 가수 박혜성이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 돌연 자취를 감췄던 그의 소신 있는 행보와 숨겨진 사연에 다시금 이목이 쏠린다.
1968년생인 그는 수려한 외모로 데뷔 전부터 학생복 모델 등으로 활약했다. 고3 시절, 학력고사를 완전히 마친 후에야 활동을 허락한 엄격한 부모님과의 약속에 따라 1986년 12월 1집 ‘경아’로 가요계에 등장했다.

이후 ‘도시의 삐에로’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당시 김승진과 하이틴 스타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다. 소년미가 공존하는 그의 전성기 비주얼은 현시대 1020 세대에게도 ‘80년대 김수현’이라 불리며 감탄을 자아낸다.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독보적인 분위기를 뽐내던 그는 대학 진학 후 학업에 충실하며 점차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났고, 4집 앨범을 끝으로 방송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 것은 타의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진로 변경 때문이었다. 아이돌 스타로서의 중압감도 컸지만, 무엇보다 ‘무대 위 가수’보다 ‘무대 뒤 창작자’로서의 삶에 더 큰 매력과 적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후 해외를 돌며 당시엔 생소했던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을 익힌 그는 다른 가수들의 앨범을 돕고 광고와 드라마 음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조용히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그는 특히 2002년 국민 드라마 ‘야인시대’의 OST인 ‘영웅주의’와 ‘야인’ 등을 작곡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수많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광고 음악, 영화 음악까지 전담하며 실력파 프로듀서로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여러 추억 소환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 1순위로 거론되었음에도 끝내 카메라 앞에 나서지 않았다. 가수 이재영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SNS에 여전히 동안의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촬영 등에는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려했던 최정상 스타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묵묵히 제2의 인생을 걷고 있는 그의 행보에 팬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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