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주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크지만, 무릎과 허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를 안아 올릴 때마다 욱신거리는 허리에 힘을 주며 참아내는 황혼육아는 때로 며느리나 사위와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이어지곤 한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도움이 정작 돌아올 때는 서운함과 상처로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젊을 때처럼 무조건 참는 것이 덕목이라 믿었던 부모들은 이 모호한 갈등 앞에서 길을 잃는다.

몸의 비명보다 관계의 눈치를 먼저 볼 때
아이를 예뻐하는 마음과 육아를 견뎌내는 신체적 한계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쑤시는 허리를 꾹 참아가며 온종일 아이를 안아 올려도, 육아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으면 마음속에서 서운함이 왈칵 밀려온다.
자식 부부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의 몸이 보내는 비명을 무시하면, 그 참음은 결국 불만과 분노로 쌓이기 쉽다. 참고 견디는 것만이 부모의 미덕이라 여기던 옛 방식은 더 이상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거리를 두어야 비로소 보이는 심리적 경계선
며느리나 사위와의 부딪힘은 육아 기준의 차이보다도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가 사라졌을 때 자주 나타난다. 도우려는 마음이 과해지면 상대의 말 한마디나 표정 변화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나만의 건강한 심리적 경계선이다. 내가 기꺼이 도울 수 있는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자식 부부의 육아관과 나 자신의 감정을 분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거리를 둘 줄 알아야 비로소 서운함도 줄어든다.
나를 가장 먼저 돌봐야 하는 이유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불안과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타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 ‘네 잘못이 아니야, 그동안 버텨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라고 자신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나를 가장 깊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점을 묵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식이나 손주를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일은 당연한 의무가 아니다. 예외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마음을 보태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손주를 안아 올리기 전에 내 허리와 몸 상태를 먼저 살피고, 서운함이 쌓이기 전에 건강한 심리적 경계선을 세워야 한다. 타인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먼저 아끼고 보듬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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