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tvN ‘미지의 서울’의 박보영 배우를 만나다 – 2부
-미래와 미지의 감정 장면이 유독 힘들었을 것 같다.
1부에서 두 사람이 화단에서 떨어지고 나서 감정을 주고받는 부분이 중요했다. 같은 장면을 일주일 정도 텀을 두고 촬영했는데 새로운 마음으로 연기해야 했다. 서로 우는 방식을 다르게 가려고 했는데, 미래는 이 와중에도 꾹꾹 참으면서 눈물을 삼키듯 울었으면 했고, 미지는 아이처럼 엉엉 울어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주인공을 쌍둥이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기획 의도나 작가님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자신을 대신할 사람에 대한 로망이 존재한다고 하더라. (미신 중에)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먹고 분신을 만든다는 말이 있잖나. 어릴 때는 무서워서 밤에도 손톱을 안 깎았는데 (그러면서도) 제가 두 명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타인의 인생이 내 인생보다 나은 것 같고 좋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이해하는 게 포인트이자 드라마의 가장 큰 장치라고 생각했다.
-미래, 미지 둘 중 마음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
둘 다 자식같이 똑같이 사랑하는 캐릭터였지만.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던 인물은 미지였다. 미래가 겪는 상황은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못 해봐서 미지의 영역이었다. 반면 미지는 저도 시골 출신이라 동질감을 느꼈다. 이일 저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다. 또 실제 엄마랑 관계성도 비슷했다. 살면서 여러 실패를 경험하고 낙담도 해봤기 때문에 미지가 ‘이러다가 아무것도 안 되는 건 아냐’라고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게 기억나기도 했다.
-호수(박진영)와 세진(류경수)의 상반된 스타일로 미지, 미래의 로맨스를 그려 많은 응원을 얻었다. 호흡은 어땠나?
두 사람의 첫인상은 반대였다. 진영 씨는 아이돌 출신이라 활발하고 장난스러울 줄 알았는데 애어른인 구석이 많았다. 경수 씨는 까불거리는 장난스러움이 아니라 세진이처럼 한마디를 툭 던지는데 웃긴다. 집에서 자려고 누우면 피식하고 떠오르는 스타일이다. 호수는 미지의 들뜬 마음을 ‘안 돼’하면서 눌러주는 맛이 있고, 세진은 미래가 심연으로 가라앉아 있을 때 ‘해봐도 괜찮지 않나’하면서 꺼내 준다. 호수랑은 20대로 돌아가서 풋풋함이 있었고 세진과는 어른의 연애는 이런 건가 싶을 차이가 명확했다. 한 드라마에서 양쪽 모두 응원을 받는 상황을 마주하겠나. (웃음) 한 사람과 연결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대부분인데 둘 다 연결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 행복했다.
벌써, 데뷔 20년 또다시 전진

-극 중 엄마인 옥희(장영남)는 두 딸을 쉽게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또 딸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해서 종종 오해를 산다. 실제 모녀 관계는 어떤가?
엄마는 제가 미래처럼 본인을 대한다고 생각한다. 조심스럽고 어려운 딸이라 여기시는 것 같다. 반면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 (웃음) 드라마처럼 엄마가 제 앞에서 우신 적이 있었다. 막 싸우다가도 엄마가 우니까 모든 게 한순간에 다 없어지면서 ‘아.. 왜 울어’하게 되더라. ‘내가 잘못했지’, ‘불효녀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모녀는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나 싶었다. 대사도 현실에 기반한 것들이어서 엄마와의 관계를 더욱 떠올렸다.
-누구나 실패를 거듭하면서 성장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만의 상처 극복 방법, 멘탈 관리법이 궁금하다.
미지가 한강을 좋아하는데 저도 좋아한다. 울고 싶은데 울 수 있는 공간이 잘 없어서 한강에 가서 엄청 울었던 적도 있었다. 차 끌로 울러 가는 저만의 한강 스팟이 있다. 그것도 미지랑 비슷했다. 일하다가 잘 안되고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면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을 때가 생기는데 그때 가게 되더라. 거기서 다 쏟아내면 후련해진다. 또 배우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직업이라서 팬들의 메시지나 편지 중에 챙겨 놓은 것들을 다시 찾아 읽어보기도 한다. 힘들 때마다 모아 둔 편지를 보면서 다짐하는 편이다.
-드라마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나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면?
초반에 할머니가 위로해 주는 장면이다. 제가 ‘나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이야기하면 할머니가 ‘다 살자고 하는 짓은 용감한 거야’라고 말해주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대부분의 내레이션에서 공감했다. 저도 시청자분들과 비슷하게 방송을 보면서 좋은 대사는 인터뷰할 때 말해야지 생각하고 따로 적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르는 거다’라는 말이 ‘오늘 하루 힘내세요’ 보다 좀 더 직관적인 위로 같았다. 어제 못한 부분을 붙잡고 촬영을 이어가게 될 때 곱씹었다. 내일 할 것들이 산더미지만 내일은 멀었고 오늘 할 일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실생활에도 자주 떠올렸던 말이다. 호수나 엄마들의 우정도 좋은 대사가 많다. 그리고 미지의 선택을 통해 저를 돌아보면서 ‘미지 같은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생각하기도 했다.
‘미지의 서울’은 누구나 삶에 고통이 따른다는 게 핵심이었다. 남의 인생이 부럽고 좋아 보이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마음을 남한테만 적용하지 말고 나에게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삶도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중인 거다. 자신에게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조명가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통해 연달아 감정과 연결된 작품을 지속한 이유가 있나?
배우로 활동한 지 10년 정도 지났을 때 밝고 통통 튀는 이미지 하나로 굳혀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저도 여러 모습이 있는데 조금씩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때 마침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제가 받은 위로를 나눠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고민이 들었을 때 비슷한 작품을 만나서 일부러 선택했다. 차기작이 <골드랜드>인데 장르나 캐릭터도 어둡고 어둠의 끝장을 볼 것 같다. 촬영장에서 기본적으로 어두워지고 평상시 기본값도 차분해지더라. 다시 밝은 작품으로 돌아가려고 한다.(웃음)

-작품 선택은 당시 상황이 영향을 끼칠 때가 많은 건가?
이런 질문을 자주 주시는데 그때마다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지만 어렵다. 일단 대본이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게 첫 번째다. 그런데 또 재미는 저만의 주관적인 기준이다. 술술 다음 장으로 잘 넘어가긴 하는데 다 읽었을 때 재미 여부가 직관적으로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도 공통적인 건 ‘마음의 동요’겠다. 인물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하면서 마음이 움직이니까 선택하게 되는 거 같다.
-2006년 EBS 청소년 드라마 ‘비밀의 교정’을 통해 데뷔했다. 내년이면 20년 주년이다.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간 소회가 궁금하다.
이 일을 20년 가까이하게 될지 전혀 몰랐다. 데뷔할 때만 해도 매일 감독님에게 혼났고 집에 돌아갈 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온 우주가 이 일은 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생각할 정도로 외부적인 요소도 도와주지 않았다. 근데 또 정신 차리면 연기를 하고 있더라. (웃음) 요즘은 배우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저한테 주는 점수가 후한 편이 아니었다.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를 하고 나서 스스로 칭찬하는 방법을 공부하게 되었다. 20년을 돌아보니 길지만 또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활동하고 있으니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 거다. 배우가 늘 선택받아야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한데 관심 주실 때까지 잘하고 싶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크다. 그 마음을 높게 책정해 두어야 그나마 중간쯤은 도달하는 것 같다. 다만 장르나 캐릭터가 변하면 그때마다 제공할 수 있는 재미, 메시지, 감동은 달라지겠지만 처음 마음은 늘 변함없다. 배우는 대본을 읽고 느낀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제가 느낀 감정을 많은 분들도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만이라도 계속 잘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전달자로서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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