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디즈니+ ‘나인퍼즐’의 손석구 배우를 만나다
디즈니+ 시리즈 ‘나인퍼즐’은 10년 전, 미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현직 프로파일러인 ‘이나’(김다미)와 그를 끝까지 용의자로 의심하는 강력팀 형사 ‘한샘’(손석구)이 의문의 퍼즐 조각과 함께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 스릴러다. 지난 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려 범인이 가려졌다.

연쇄살인 사건의 범일을 쫓는 추리물의 겉모습 속에 부조리한 사회상을 담은 치기가 돋보였다.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반복되는 재개발 참사를 연상케한다. ‘사람을 죽여서 사람 살 곳을 만들지’라는 승주(박규영)의 대사는 상실과 비극이 교차하는 슬픈 진혼곡이다. 진범 여부, 시즌2, 수거되지 않은 떡밥 등 매주 에피소드가 공개 될 따마다 다양한 뇌피셜의 진가를 발휘하며 화제성에 올랐다.
극 중 한샘을 연기한 배우 손석구와 지난 5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업가 출신이자 연출가, 작가이기도 한 올라운더 손석구는 “그런 수식어가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낭만적인 사람이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여겨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한다”며 “글(시나리오)은 계속 쓰고 있고 꿈도 있다. 해보지 않은 분야의 도전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배우 아닌 또 다른 변신을 기대케 했다.
낯선 세계관, 잘 모르는 장르

-한샘의 캐릭터 구축 과정이 궁금하다.
한샘은 집요함이 특징이다. 마냥 현실 같지도, 만화 같지도 않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매번 그 중간을 맞추려고 전략을 짰다. 날것의 느낌이 극을 너무 만화적인 세상 속으로 가지 않게 해주었다. 의상이나 발언, 가끔 튀어나오는 도발적인 행동이 현실과 떠 있는 부분이라 적절한 톤을 맞추려고 했던 게 초목표였다.
-‘나인퍼즐’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낯선 세계관, 잘 모르는 장르였다. 하고 싶은 걸 넣을 수 있는 여백 있는 캐릭터가 좋았다. 어떤 캐릭터는 내가 하나, 남이 하나 비슷한 맥락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한샘은 내가 아닌 다른 배우가 했다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나와도 무리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해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프로파일러 설정과 다른 점 중 하나가 마치 사건에 빙의한 듯 연극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대본에는 ‘내가 누구라면’이라면서 접근하지 않고, ‘이 사람이라면 저랬겠지’, ‘저 사람이라면 저랬겠지’ 정도였는데 촬영 당일 감독님에게 피해자나 가해자가 빙의한 것처럼 연기해 보는 게 어떨지 제안했다. 대본과 달랐던 부분인데 내용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나 보다. 그 장면을 계기 삼아 이나가 당황해하잖냐.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넣을 기회기도 하면서,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사례였다.
-상대역 김다미와, 윤종빈 감독과 작업은 어땠나?
다미는 항상 의지했던 동료다. 의상을 보통 따로 작업하는데 회의도 같이 하고 마지막 의상도 같이 맞췄다. 사진도 찍어 보고 수정도 해봤는데 이제는 코난을 보면 그냥 다미 같다. (웃음)감독님은 경험이 많고 본인이 원하는 것도 명확하다. 창작물의 결과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도 확신이 있는 분이다. 다 구축해 놓은 틀 안에서 저는 그저 믿고 연기만 하면 되었다. 최대한 저에게 할당된 창작욕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했다. 집요하고 철두철미하게 사전 준비를 해 놓는 분이다.
한샘이 계속 모자를 쓰는 이유를 궁금해하시는데, 제가 자주 모자를 쓰는 걸 보고 감독님이 캐릭터에 녹여보면 재미있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 드라마는 행위의 근거로 상태를 파악하는 매체니까 모자를 벗고 쓰는 행동이 직관적인 요소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캐치가 엄청 빠른 분이다.

-10년 동안 범인이라 믿었던 한샘이 이나를 완전히 믿기 시작한 지점이 언제라고 보나?
한샘의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단서는 늘어나고 못 믿을 만한 근거들은 점점 없어지는 상황인 거다. 그게 5부 마지막인데 소주를 마시는 순간 믿을 확신이 든 거다. 갑자기 믿음이 생겼다기보다 믿기로 선택을 한 거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때는 의미 있는 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나인퍼즐’의 시작은 10년 후 다시 시작된 연쇄 살인이고, 한샘이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고 본다. 소주를 마시는 순간부터 갑자기 믿은 건 아니다.
-존경하는 선배인 정호(김선균)와 드라마 라인도 호평받았다?
한샘은 본인을 의심해도 정호 형은 아니라고 할 만큼 존경하는 사람이 정호다. 치명적인 약점이 잠재적 용의자라 확신이 서면 서장이든 뭐든 들이대고 만다는 건데. 정호에게도 한샘의 행동이 상처이지 않았을까 싶다. 안 그러려고 하다가도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양가적인 마음이 만들어져서 재미있었다. 그 감정을 성균 형이랑 했다는 게 신의 한 수였다. ‘D. P’를 해봐서 맑은 사람인 걸 알았기 때문인데. 다들 양 목사라고 할 만큼 바른 사람이라 정호랑도 매칭이 잘 되었다. 형이 ‘현실에 이런 사람이 있겠어?’라고 했었는데 있다면 형이라고 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D.P’의 김성균 배우 인연도 있지만 현봉식 배우도 상관이었다. 이번에는 부하직원이라 호흡 맞춘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D.P’ 때는 저보다 어린데 형 같아서 어려웠는데. 친해지니까 귀여운 동생 같더라. 봉식의 원래 모습과 실제 저와 관계를 넣다 보니 ‘그러니까 네가 MZ 소리 듣는 거야’라는 대사가 나온 거다. 개인적으로 잘 어울렸던 거 같다.
다작 배우 보다, 진정한 변화 선보일 것

-‘나인퍼즐’이 오픈되면서 주변 반응도 궁금하고, 본인은 대본을 읽으면서 범인을 맞는지도 알고 싶다.
요즘은 시청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볼 수 있잖나. 디테일하게 읽지 않아서 한샘까지 범인으로 모는지 몰랐다. (웃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도 추리 요소로 봐주시는 게 흥미로웠다. 주변에서 9부까지 보고 맞춘 사람이 딱 한 명이었는데 성공적이라고 봤다. 특히 저는 속이기 쉬운 관객이라 작품의 의도대로 계속 휘둘렸다. 이나가 범인일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진범을 정체도 생각 못 했다.
-단편 ‘재방송’의 시나리오와 연출도 맡았다. 연출자로서 윤종빈 감독에게 배운 점이 많았겠다.
감독님이 지나가듯 말한 게 진리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는 관객(시청자)이 배우가 뭘 하는 걸 보는 거다’라는 명쾌한 정리였다. 배우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영화(드라마)다. 의미를 찾았다면 이미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제가 감독님의 팬이라 다양한 작품을 좋아한다. 감독님은 자체가 씨네필이자 영화 장인이다. 고유의 색이 있는 작품이 많지만 취향이라면 ‘범죄와의 전쟁’을 좋아하고 최근에는 ‘공작’을 다시 봤는데 놀라웠다. ‘범죄와의 전쟁’을 삼십 대 초반에 만드셨다니 저는 그때 뭘 했나 싶었고, ‘공작’은 꽤 된 영화인데 이미 세련된 영상과 스타일을 찾았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았다.
-다작 배우 반열에 올랐다. 이미지가 소진되는 두려움은 없나. 앞으로 연기 방향에 변화가 있는 건가?
예전에는 이제 막 발 들인 세계에서 흡수해야 한다는 감정으로 신났다. 이제는 흡수한 걸 의미 있게 발산하는 데 의미를 주려 한다. 동력을 들여서 한 작품씩 가는 데 재미 들인 시작 같다. 황금기라 불리는 2000년 초반을 돌아보면 원톱성 영화, 드라마가 많았지만 늘 저는 누군가와 같이 하는 걸 많이 해왔다. 예를 들면 1번 배우(주연)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거다. 제가 중심으로 나오는 작품은 ‘댓글부대’ 정도가 있는데 그 작품이 끌린 이유도 여러 명의 협업이기 때문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보탬, 쓰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때와 달라진 건 온전히 무게를 저에게 쏠리는 작품을 해볼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원톱 주인공의 욕심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의 노하우가 쌓였다고 보는 게 맞겠다. 캐릭터의 차이점을 알아가는 도움을 받기도 했고, 그동안은 겹쳐 촬영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도 되었다.
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배우로서 숙명이라 생각했던 거다. 또 변화를 위해서는 리서치가 필요한데 그동안은 제 안의 것을 꺼내서 썼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의 변화를 불러 볼 용기가 생겼다. 이제부터는 ‘변화’가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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