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히틀러가 단 한 명의 유대인을 살렸다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독재자 히틀러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가 직접 보호를 지시한 유대인이 단 한 명 존재했다. 그 이름은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의사 에드워드 블로흐였다.
히틀러는 블로흐를 ‘고결한 유대인’이라 불렀다. 모든 유대인이 그와 같았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증오로 가득 찬 인물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 발언은 더 기괴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히틀러의 어머니 클라라 히틀러에게서 시작됐다. 클라라는 유방암을 앓고 있었고 가난으로 치료를 중단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시 치료를 맡은 인물이 블로흐였다.
블로흐는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고가의 약물과 진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봤다. 의사로서의 책임감이 선택을 이끌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이는 열여덟 살의 아들 히틀러였다. 그는 어머니를 살리려 애쓴 의사의 모습을 잊지 않았다. 이 기억은 훗날 기묘한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블로흐를 나치 정책의 예외로 지정했다. 강제수용과 재산 몰수에서 제외됐다. 심지어 미국으로 안전하게 이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같은 시기 수백만 명의 유대인은 보호받지 못했다. 체계적인 박해와 학살이 멈추지 않았다. 개인적 은혜와 국가적 범죄가 동시에 존재했다.
이 사건은 히틀러의 인간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 사람을 살린 손이 수많은 생명을 죽였다.
블로흐를 지킨 선택은 자비가 아니라 모순이었다. 기준 없는 선별은 더 큰 공포를 남겼다. 역사는 이 예외를 통해 독재의 잔혹함을 다시 확인한다.

















댓글6
공짜좋아하는자들아_솔직해지자.
한국에서는 그 유대인의사가 했던 정도를 하는 의사는 수두룩한데도, 의사 악마화에 여념이 없는점이 선진국 국민과 차이인거 같다.
구형남
마우리스의 증조부가 유대인이 확실하므로 이는 '1750년 이후로 혈통이 순수해야 하는' SS의 자격조건에 미달이라면서 마우리스와 그 형제들의 축출을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마우리스와 그의 형제들을 명예 아리아인(Honorary Aryans)으로 임명하면서 끝까지 그를 보호함.
구형남
1935년, 하인리히 힘러는 마우리스의 증조부가 유대인이 확실하므로 이는 '1750년 이후로 혈통이 순수해야 하는' SS의 자격조건에 미달이라면서 마우리스와 그 형제들의 축출을 주장했지만... 히틀러는 마우리스와 그의 형제들을 명예 아리아인(Honorary Aryans)으로 임명하면서 끝까지 그를 보호함.
구형남
나치당의 전신인 독일노동자당(DAP) 때부터 히틀러와 친해졌던 마우리스는 나치당의 창립 멤버이고, 히틀러의 개인 기사이자 경호원이었음. 뮌헨 폭동(맥주홀 폭동) 당시에도 히틀러와 함께 구속되는 등 그야말로 동고동락했고, 돌격대(SA)에서 SS(슈츠슈타펠)가 독립하여 확대 개편되자 'SS 2호'가 됨. ('SS 1호'는 당연히 히틀러) 비록 히틀러의 이복 조카인 Geli Raubel과 교제하다가 히틀러에게 발각되어 최측근에서 밀려난 후, 실권을 잃었지만 'SS 2호'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됨. 1935년, 하인리히 힘러는 마우리스
구형남
1941년 8월 27일 하인리히 힘러 당시 나치 친위대장은 게슈타포(비밀경찰)에 보낸 편지에서 “총통의 바람에 따라 유대인 에른스트 헤스에게 안식과 보호를 제공하라”며 “어떤 상황이건 물심양면으로 불편하지 않게 대하라”고 명령했다. 헤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소위로 복무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해 전쟁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당시 히틀러는 상관이던 헤스에 대한 신뢰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헤스는 나치가 정권을 잡은 뒤 어머니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인종법에 걸려 고초를 겪었다. 이때 히틀러는 헤스가 이탈리아로 피신하도록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