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범죄가 될 수 있는 것이 한국에서는 자유

1990년대 북한에서 태어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고 6년간 인민군 간호사로 복무했던 채수향 씨가 한국에 정착하기까지의 여정을 밝혔다. 이 내용은 채 씨가 유튜브 채널 ‘사이다 : 사실은 이렇습니다’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채 씨의 탈북 결심은 북한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한국의 실상에 대한 깨달음에서 비롯되었다.
군 전역 후 생계형 중국 무역에 나섰던 채 씨는 자유로운 국경 통행과 장사를 위해 보안서, 국경 경비대 등 수많은 기관에 뇌물을 바쳐야 했다. 반면, 중국을 오가며 접한 한국 물품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보는 그녀에게 충격을 안겼다.

채 씨는 “세금을 내고 자유롭게 하는 자본주의와 달리, 북한에서는 불법 밀수로 주눅 들어 더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했다”며, 끝이 없는 뇌물의 고리를 벗어나고자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를 설명했다.
2개월 반의 험난한 탈북 과정을 거쳐 2015년 한국에 도착한 채 씨는 국정원 보호센터에서 받은 첫 식사에서 벅찬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경험했다. 배식판 위에는 김치와 함께 소고기 장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북한에서는 소를 함부로 잡아먹는 것이 엄격한 범죄였기에, 채 씨는 그것이 소고기라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게 한국이 맞구나, 우리 같은 민족이 맞구나라는 게 체감됐다”고 밝히며, 이 식사 한 끼가 오랫동안 북한 체제가 심어 놓았던 사상적 세뇌를 한순간에 풀어버리는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이후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채 씨는 단돈 10만 원을 들고 상경, 회계 공부와 강연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통일 관련 연구원 근무와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르친다’는 표현을 북한에서는 ‘배워준다’고 쓰는 등 언어적 차이를 겪었으며, ‘동작’과 ‘작동’의 차이에도 당황했던 경험을 전했다. 채 씨는 앞으로 가족들과 함께 큰 사건 없이 건강하고 무난하게 살며,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포부를 밝혔다.


















댓글3
무궁화
대한민국의 토착친일매국노, 불법계엄 내란반락세력 내란수괴 척결과 극우빨괭이 밀정들을 샅샅이 색출하여 소탕해야 한다.
호시우보
목숨 걸고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자유 한국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꿈을 펼쳐 나아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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