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을지문덕 장군, 구국의 영웅인가? 미스터리 인물인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은 612년 살수대첩(薩水大捷)에서 수(隋)나라의 대군을 격파하며 고구려를 지켜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관련된 기록은 극히 드물어 출생, 가계, 전후 행적 등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에 싸여 있어 한국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본 기사에서는 역사학계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을지문덕 장군이 미스터리 인물로 불리는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한 논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스터리로 남은 을지문덕의 생애

을지문덕 장군에 대한 가장 큰 미스터리는 그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그의 가계에 대해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출생지 또한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의 문인 홍양호(洪良浩)가 저술한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평양 석다산(石多山)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후대의 기록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 심지어 그가 살수대첩 이후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을지문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고구려 귀족 가문 출신?
‘을지(乙支)’라는 성씨에 고대 한국어에서 존칭으로 사용되던 ‘지(支)’가 붙어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추정이 있다. 또한, 고구려의 재상이었던 을파소(乙巴素)의 후손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선비족(鮮卑族) 출신?
중국의 역사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위지문덕(尉支文德)’으로 기록된 점, 선비족의 성씨 중 하나인 ‘울지(尉遲)’와 음가가 유사한 점 등을 근거로 선비족 출신 귀화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신진 세력?
뛰어난 한문학 실력을 바탕으로 낙랑(樂浪) 또는 대방(帶方) 지역의 토착 호족 세력 출신으로 새롭게 등장한 신진 귀족 세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을지’는 이름이 아닌 존칭이다?
‘을지(乙支)’를 성씨가 아닌, 고구려 관등 중 하나인 ‘우태(于台)’와 같이 연장자나 가부장을 뜻하는 존칭으로 이해하고 순수 고구려인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알고보니 ‘을지’는 관직명?
단재 신채호는 “을지”를 관직명으로 보고, 고구려의 관직인 울절(鬱切) 또는 삼한의 읍차(邑借)와 통하는 것으로 주장했다.
이처럼 을지문덕의 가계와 출신에 대한 다양한 설들이 존재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살수대첩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을지문덕 장군의 가장 큰 업적은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나라의 대군을 격파한 것이다. 그는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로 수나라 군대를 유인하고, 지치게 만들었으며, 결국 살수에서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그가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전략들이다.
거짓 항복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항복하며 수나라 군영에 들어가 적의 상황을 파악했다. 군량 부족과 사기 저하를 확인한 그는 이를 역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유인 작전
수나라 군대와 싸울 때마다 일부러 패하며 후퇴, 적을 평양성 인근까지 깊숙이 유인했다. 지친 수나라 군대는 보급 문제까지 겹쳐 전투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심리전
적장 우중문(于仲文)에게 조롱 섞인 시를 보내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회군을 유도했다.
평양성에서 퇴각하던 수나라 군대는 살수(薩水, 현재의 청천강)에 이르렀을 때 을지문덕 장군의 매복에 걸려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고구려군은 미리 댐을 쌓아 물길을 막아두었다가 수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는 순간 댐을 터뜨려 수공(水攻)을 펼쳤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살수대첩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서 그 어디에도 둑을 무너뜨려 수공을 펼쳤다는 내용은 없다.
살수대첩은 고구려-수 전쟁의 승리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수나라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13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하고도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수나라는 국력이 쇠퇴하고, 내부 분열과 반란으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을지문덕 장군은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로 고구려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을지문덕은 영웅인가, 미스터리 인물인가?

을지문덕 장군은 살수대첩에서의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고구려를 지켜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고려 시대의 김부식(金富軾)은 ‘삼국사기’에서 “수나라 군사를 거의 다 섬멸한 것은 을지문덕 한 사람의 힘이었다”라고 극찬했으며, 조선 시대에도 꾸준히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을지무공훈장, 을지로 등 그의 이름을 딴 기념물들이 존재하며, 살수대첩은 한국사 3대 대첩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은 영웅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하여 ‘미스터리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출생, 가계, 최후 등 그의 삶과 관련된 많은 부분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이는 그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을지문덕은 분명 고구려를 구한 영웅이지만, 동시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간직한 인물인 것이다.
역사학계는 앞으로도 을지문덕 장군과 관련된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그의 삶과 업적을 연구하여 미스터리를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의 삶이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는 점은 오히려 그의 업적을 더욱 신비롭고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며, 후대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상상력과 탐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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