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루프 – 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가 고려에 망명하다, 지금 그 후손은…
한반도의 역사 속에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중에서도 고려 시대에 베트남 왕국의 왕자가 귀화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졌다.

1009년, 베트남 최초의 독립 왕조인 리(Ly) 왕조가 건국된다. 하지만 216년 후, 왕조는 권력 다툼과 혼란 속에 막을 내리게 된다. 1226년, 쩐(Tran) 씨 일족이 권력을 찬탈하면서 리 왕조의 왕족들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리 왕조의 왕자였던 이용상(李龍祥)은 숙부이자 왕자 신분로서 군의 총수였다. 쩐 씨 일족의 계략을 미리 알아차리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배를 타고 망명길에 오른다.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송나라로 향하던 배는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고, 긴 표류 끝에 한반도의 서해안, 황해도 옹진반도에 도착하게 된다.
고려, 이방인을 품다
이용상이 도착한 곳은 고려의 영토였다. 당시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용상은 옹진 백성들을 구휼하였고, 몽골군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고려 조정의 신임을 얻게 된다. 고려 고종은 그의 공을 기려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하고, 식읍을 하사하며 정착을 돕는다. 또한, 이용상에게 화산(花山)을 본관으로 하는 이(李) 씨 성을 내린다. 이렇게 하여 한국 화산 이씨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화산 이씨, 고려에 뿌리내리다

이용상의 후손들은 고려 사회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한다. 장남은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차남은 안동부사를 역임했다. 6세손 이맹운은 공민왕 때 호조전서를 지내다 고려가 쇠망하자 은거하며 절개를 지켰다고 전해진다. 화산 이씨는 베트남 왕족의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려의 백성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방인을 포용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고려 사회의 개방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대의 화산 이씨, 베트남과의 연결고리

시간이 흘러 1995년, 화산 이씨 종친회는 780년 만에 선조의 고향인 베트남을 방문한다. 베트남 정부는 이들을 극진히 환대하며 왕족의 후예로서 예우했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에게 베트남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리 왕조 기념 행사에 초청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화산 이씨 31대손인 이창근 씨는 2010년 베트남으로 귀화하여 베트남 공산당 조국전선부 위원이자 베트남 관광대사로 활동하며,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에 힘쓰고 있다.
고려 시대로부터 시작된 화산 이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귀화 설화를 넘어,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특별한 인연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역사는 흐르고, 문화는 융합되며, 사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화산 이씨의 이야기는 그러한 역사의 진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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